목차 1. 엠마뉴엘 웅가로의 유년기와 성공
2. 한계에 부딪힌 웅가로
3. 페라가모와의
합병
4. 시사점
5. 웅가로, 그 이후
본문 사업전략갈등 발레리오(웅가로
CEO) 페라가모 라이선스 유지와 부티크의 확장 →브랜드 노출 및 인지도 향상을 노림 라이선스 해지와 제조거점
이동 → 고급스런 브랜드 이미지 고수 라우라(웅가로 부인) 페라가모 리스크를 감수한 과감한 홍보와 개혁 리스크를 꺼린
보수적인 사업진행 - 웅가로의 아름다운 디자인 능력과 페라가모의 마케팅, 유통채널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노렸지만, 큰 성과를 달성하지
못함. → 빠르게 변하는 패션시장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상황판단으로 점차 입지가 좁아짐. 4. 시사점 - 시대의 트렌드를
따르가지 못한 웅가로와 빠르게 변하는 패션산업에 맞지 않는 페라가모의 의사결정 속도는 emanuel ungaro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
보수적인 사업활동은 실패를 피할 수 있지만, 성공의 가능성도 놓치게 된다. 5. 웅가로, 그 이후 - 2004년 큰 규모의 적자로
오뜨 꾸띄르 포기. 2005년 웅가로 은퇴, 웅가로는 브랜드 디자인에서 완전히 손을 뗌.
본문내용 남부 프로방스
출신. 양복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음. 그는 어릴 적부터 파리 오뜨 꾸띄르(Haute couture)를 디자인하는
것을 꿈 으로 하였다. - 파리로 넘어온 뒤, 앙드레 쿠레주의 추천으로 발렌시아가 파리 패션업계의 황제. 디올, 샤넬과 함께 20c 최고의
꾸띄르 디자이너. 건축학이라는 배경을 패션에 응용해 심플한 옷을 디자인. 의 어시스턴트로 패션계에 입 문. 그의 지도하에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 1965년 연인과 회사를 차려 독립, 1967년 GFT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본격적인 확장 에 돌입. -
그의 패션은 발렌시아가에게 배운 전통적 디자인법으로 제작. 여성을 존중하는 로맨틱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채가 특징. 2. 한계에 부딪힌
웅가로 - 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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