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쓰리세븐의 국제마케팅 성공사례
목차 1. 쓰리세븐의 역사 및 소개 2. 해외진출 과정의 역경• 극복 과정 2.1 신뢰는 생명이다 2.2 품질로 승부를 걸다 2.3 부가가치의 창출 2.4 새로운 유통 경로의 확보 2.4.1 월마트를 뚫어라 2.5 위기를 기회로 2.5.1 미국 보잉사와의 상품권 분쟁 2.5.2 중국의 복제품 2.5.3 911 테러 이후 미국 비행기 탑승객의 손톱깍기 휴대 금지 3. 매출과 번창 4. 성공 요인 및 해결방안 5. 결론 본문 계속적인 품질 개선을 거쳐 어느 정도 수출이 안정권을 찾아갈 무렵, 김형규 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였다. 당시 한국의 신규 중소기업이 처음으로 수출을 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식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얻을 수 있는 마진률이 매우 적었고 독자 브랜드가 아닌, 기껏해야 ‘Made in Korea라는 문구 정도를 새겨 넣을 수 있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품질에 자신감이 생긴 김형규 회장은, 자신의 상표를 내 걸고 당당하게 한국의 브랜드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경영활동을 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체 수출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킹 스타(King Star)라는 브랜드를 사용했으나 1978년, 한국 특허청에서 이미 그 상표를 쓰는 회사가 있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결국 김 회장은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쓰리세븐(777)이다. 쓰리세븐에서 ’7‘은 행운을 의미하는 럭키 세븐(lucky seven)에서 본따왔고, ’쓰리‘는 ’천,지,인‘을 의미한다고 김 회장은 말한다. 1975년 대성 산업사에서 시작하여 1981년에는 (주)대성금속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김 회장은 2001년 마침내 (주)쓰리세븐으로 정식 명칭을 바꾼다. 그 후 쓰리세븐은 많은 위기와 도전을 거쳐 2003년에는 마침내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되고 그 후 코스닥에까지 등록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김형규 회장 홀로 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것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보좌해 주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다. 김 회장과 이들은 각각 자신의 전공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우선 김형규 회장은 쓰리세븐의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로 경영활동 전반을 담당한다. 세계 일류화 상품 전문위원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사외 활동도 활발하여 제2건국회 충남위원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부사장 김상묵은 전기공학과 출신의 공학도로 기업의 생산과 관련된 사항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쓰리세븐이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인 만큼 전반적인 무역을 담당하는 이사를 두고 있으며 제조업의 특성상 실제적인 기업의 생산 활동을 총괄하는 공장장 역시 자신의 분야해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 덕택이라고 김회장은 말한다. 각각의 업무가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는 덕에 복잡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도 쓰리세븐이 갖는 장점의 하나다. 기업의 조직 역시 주요 경영진을 중심으로 수출 제조업에 적합한 체계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김형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하여 관리 본부, 생산 본부, 그리고 영업 본부로 나뉘어 본문내용 부가가치의 창출 2.4 새로운 유통 경로의 확보 2.4.1 월마트를 뚫어라 2.5 위기를 기회로 2.5.1 미국 보잉사와의 상품권 분쟁 2.5.2 중국의 복제품 2.5.3 911 테러 이후 미국 비행기 탑승객의 손톱깍기 휴대 금지 3. 매출과 번창 4. 성공 요인 및 해결방안 5. 결론 PROLOGUE 지난 1997년 10월, 중국 경공업 단체 방문시 중국 주룽지 부총리가 한 말이 있다. “한국의 777같은 손톱깎이는 외관과 날이 이렇게 정밀한데 우리 중국은 왜 그 수준을 못따라 가는가?” 16억 인구의 마음을 사로잡은 쓰리세븐. 이 쓰리세븐 제품은 중국에서 명품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경제 대국 중국의 부총리의 발언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는 한국의 높은 기술력을 부러워하는 콧대 높은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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